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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칭 더 보이드》

by yespen38 2025. 4. 30.

삶은 때로 우리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깊고 차가운 곳으로 우리를 밀어넣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한 걸음, 또 한 걸음을 내딛습니다.
오늘은 인간이 가진 '살아내고자 하는 의지'를 가장 치열하게 보여주는 연극, 《터칭 더 보이드》를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얼어붙은 절망 속, 끝까지 살아남기 위한 사투

《터칭 더 보이드》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입니다.
1985년, 두 명의 영국인 산악인이 페루의 고봉, 시우라 그란데(Siula Grande)에 도전한 실화를 담고 있죠.

이 연극은 극한의 자연과 극한의 고립감 속에서
어떻게 인간이 삶을 포기하지 않고 버텨낼 수 있는지를 묻습니다.

어디에도 손을 뻗을 수 없는 깊은 균열,
숨조차 쉬기 힘든 고산 지대,
깨진 다리와 다가오는 죽음.

그런 절망 한가운데서,
조 심슨(Joe Simpson)은 결심합니다.

"살아야 한다."

그리고 그는, 거의 기적처럼,
수십 미터 아래 빙벽 깊숙이 떨어진 곳에서 기어오르기 시작합니다.

연극은 시종일관 차갑고 거칠지만,
그 차가움 안에 숨은 인간의 '작은 희망'을 끈질기게 보여줍니다.

《터칭 더 보이드》는 단순한 모험극이 아닙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인간이, 끝끝내 삶을 선택하는 이야기입니다.

 

가장 깊은 고통 속에서도 희망은 사라지지 않는다.

관객들은 조의 고통을 함께 체험합니다.
얼어붙은 손, 꺾인 다리, 갈라진 입술, 깨진 정신.
그 생생한 고통의 묘사는 단순히 고통 자체를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조가 겪는 이 끔찍한 고통의 서사는, 우리 모두가 삶에서 마주하는 절망의 순간들을 은유합니다.
그가 차가운 얼음 위를 기어가듯, 우리는 인생의 얼어붙은 시간을 기어갑니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때로는 눈물로, 때로는 분노로.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 고통의 과정은 절망이 아닌 희망을 이야기합니다.
희망은 환한 빛처럼 등장하지 않습니다.
희망은 찬란한 구호나 드라마틱한 반전 속에 있지 않습니다.
희망은 얼어붙은 손끝을 떨며 뻗는 조그만 움직임 속에,
가느다란 숨을 몰아쉬며 다시 한 번 일어서는 그 순간 속에 조용히 존재합니다.

외로움에 맞서며, 절망을 이겨내며,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한 발 더 나아가며,
조는 우리에게 증명합니다.
"인간은 생각보다 훨씬 더 강하다."
그것은 무력한 긍정이 아닙니다.
무수히 많은 포기하고 싶은 순간을 지나온 끝에 도달한 진실입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조가 절망에 빠질 때마다 떠오르는 과거의 기억들과 가족, 친구들의 모습입니다.
그들은 그의 곁에 실제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의 마음속에서는 선명하게 살아있습니다.
그 존재들은 어쩌면 조가 붙들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의 끈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추운 고산 지대에서, 그는 수없이 쓰러지고 포기할 뻔하지만, 단 한 가지를 붙잡습니다.
"살아남아야 한다."
"돌아가야 한다."
이 단순하지만 절박한 의지가,
그를 빙벽 아래 어둠 속에서도 앞으로 나아가게 만듭니다.

조는 우리에게 말합니다.
진짜 희망은 거대한 구원이 아니라,
오늘 하루를 더 견디기로 결정하는 그 조그만 마음속에 있다고.
넘어져도 괜찮다고, 무너져도 괜찮다고,
다시 마음을 다잡고 한 걸음만 더 내디디면 된다고.
그 작은 걸음들이 모여 결국, 절망의 끝자락을 뚫고 나갈 수 있다고.

《터칭 더 보이드》는 이렇게 말합니다.
삶은 때로 잔인하고 가혹하지만, 그 모든 것을 넘어서는 '의지'가 우리 안에 존재한다고.
그 의지는 쉽게 타오르지도, 쉽게 꺼지지도 않습니다.
처음에는 미약하게, 가냘프게 타오르지만,
고통을 통과하면서 서서히 단단해지고, 단단해진 만큼 더 오래 버팁니다.
그리고 그 의지는,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우리 자신만이 꺼낼 수 있다고 말합니다.
누군가 대신 구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 대신 버텨줄 수도 없습니다.
결국 우리 자신의 손으로, 마음으로, 다시 일어서는 수밖에 없습니다.

어쩌면 조는 우리 모두의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포기하고 싶은 날들에도, 돌아가야 할 이유 하나를 품고 버티는 사람들.
얼어붙은 현실 속에서도 아주 작게 불씨를 지피는 사람들.
《터칭 더 보이드》는 그런 우리에게 조용히 손을 내밉니다.
"괜찮아, 넘어져도."
"천천히, 다시 일어나."
그 다정한 응원이 우리 삶의 눈보라 속에서도 끝끝내 한 발을 내딛게 합니다.
희망은 절망을 이겨내는 것이 아니라, 절망 속에서도 여전히 걸어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매일 넘고 있는 ‘보이지 않는 산’

《터칭 더 보이드》를 보고 나면 문득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매일 보이지 않는 산을 넘고 있다는 것을요.

지친 하루를 버티는 일

이해받지 못하는 외로움을 견디는 일

나 자신을 믿지 못하는 순간을 통과하는 일

어쩌면 우리 일상은 조가 넘어야 했던 얼음산과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고,
몸과 마음이 부서질 것 같아도,
한 걸음만 더, 한 순간만 더 버텨봅니다.

그리고 결국 우리는 알아차립니다.

"나는 생각보다 더 강했다."

《터칭 더 보이드》는 영웅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특별한 사람들만이 아닌,
우리 모두 안에 숨겨진 작고 단단한 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비록 지금 내 앞에 놓인 문제들이 거대해 보일지라도,
차디찬 어둠 속에서도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
그 희망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는 것.

그것이 이 작품이 우리에게 조용히, 그러나 깊이 건네는 메시지입니다.